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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와 어재연장군의 수자기
지난 2021년 6월, 미국에서 하나의 깃발이 우리나라에 도착했습니다. 장수를 뜻하는 한자 ‘帥’가 쓰인 깃발로 가로 4.13m, 세로 4.30m의 큰 크기에 삼베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1871년 6월 10일 한강 어귀인 강화도에서 조선과 미국이 전투를 벌인 신미양요가 일어났고 미국은 당시 전투에서 해당 기를 가져갔습니다. 당시 조선은 태극기 같은 국기가 없었으므로 이 장군기가 국경을 지키는 군대와 군사령관 본진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에도 조선의 군대는 이러한 기를 걸고 싸웠고 이순신도 그러했습니다. 당시 광성보 전투에 참여한 윈필드 슐리는 회고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아마..
2023.04.18 -
북관대첩비와 정문부
지난 2005년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 문화재가 반환되었습니다. 그 문화재는 바로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되어 있던 북관대첩비입니다. 이 북관대첩비는 러일 전쟁 중이던 1905년에 일제가 강탈해간 것으로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발발 첫 해인 1592년,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鄭文孚)가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을 무찌른 일을 기념해 숙종 34년(1707년) 함경도 길주에 건립한 것입니다. 북관대첩비란 북관(北關)에서 이뤄진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일을 기념한 비석이라는 의미로 북관은 함경도를 말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북쪽으로 치고 올라왔으며 함흥까지 도달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관군은 도망쳤으나 정문부가 의병을 모아 일으켜 이를 격퇴하였습니다...
2023.04.17 -
아픈 상처의 역사 일본군 위안부
1992년부터 현재까지 매주 수요일이면 이어지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 횟수는 1000회를 넘기며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집회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우리가 기억해야할 지울 수 없는 상처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입니다. 그것은 바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으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당했던 정신대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중 정의기억연대 소속 할머니들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일본군 ‘위안부’문제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의 성욕 해결을 위하여 일본군과 일본정부가 중일전쟁 및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점령지나 주둔지 등의 위안소에 배치한 여성으로 정신대, 군위안부, 혹은 종군위안부라고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일본군 ‘위안부’에 대..
2023.04.15 -
안중근의 가묘만 있는 이유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는 뜻으로 아명(兒名)을 응칠(應七)이라 지었으며, 자라서는 자(字)로 사용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안태훈이고 할아버지는 안인수로 할아버지는 미곡상을 운영하여 집안이 부유하였고 안태훈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당시 안중근의 집에 머물고 있던 백범 김구는 『백범 일지』에서 소년 안중근의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큰아들이 중근으로 그 때 나이 열여섯살이었는데 상투를 틀고 자주색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서 동방총(메고 다니기에 편리하도록 만든 장총의 일종)을 메고는 날마다 노인당과 신상동으로 사냥 다니는 것을 일로 삼았다. 사냥할 때도 나는 새, 달리..
2023.04.14 -
조선역사의 비극 환향녀
1636년 병자호란 이후 2년이 지난 뒤인 1638년,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로 잡혀갔던 많은 인질 중에 일부가 돌아왔습니다. 그 중에 윤씨 여인이 있었는데 그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판서 윤근수의 증손녀이자 영의정 윤두수의 종증손녀, 그리고 군수 윤종지(尹宗之)의 딸로 꽤나 이름있는 집안의 자녀였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돌아왔을 때 윤씨의 시부모는 아들 내외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단자를 예조에 올립니다. 돌아온 며느리에게 조상 제사를 밑길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런 윤씨의 시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장유였고 시어머니 김씨는 김상용의 딸이며, 남편은 장선징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며느리를 내치려한 장유는 봉림대군의 장인이었습니다. 그는 조정의 대신으로 당시 병자호란을 수습해야 하는..
2023.04.13 -
자화상을 그린 조선 후기 화가 윤두서
윤두서는 조선후기의 선비 화가입니다. 김홍도나 신윤복에 비해 윤두서란 우리에게 낯설게 들릴 수 있는데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자화상이 있습니다. 종이를 뚫고 나올 듯 강렬한 눈빛, 넘치는 기개와 결연한 의지, 그 강직한 얼굴에 고독과 우수까지 엿보이는 풍모를 보이는 이 그림에는 그의 얼굴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어 있으며 특히 살아 움직이는 듯한 수염이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사실 이 그림은 얼굴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가슴 부분의 옷깃과 옷주름까지 선명하게 표현된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종이에 달라붙은 점착력이 약해져 지워져 버렸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그가 죽기 5년 전에 그린 그림으로 자화상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만큼 조선 후기의 회화의 한 면을 잘 표현하였다..
202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