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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일본막부시기에 조선에서 파견한 외교사절단을 조선통신사라고 하며 이 때 ‘통신(通信)’이란 ‘신의를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러한 통신사 이전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이 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인해 난리는 끝이 났지만 조선은 이미 황폐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임진왜란 이후에 양국은 사이가 안좋게 지낼 줄 알았지만 이웃나라인 만큼 아에 교류를 안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으로 출병하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사명대사 유정과의 교섭을 통해 조선과의 국교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조선의 사절단을 초청한 이유는 일본 바쿠후에 대한 좋지 않았던 민심을 돌리기 위함에 목적이 있었고 그리고 조선에서 온 사절단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바쿠후에 예를 갖..
2023.04.11 -
이회영과 신흥무관학교
신흥무관학교는 1919년 5월 3일 만주에 설립되었던 독립군 양성학교로 이회영, 이동녕 등이 1911년 6월 10일 만주 삼원보에 설립한 신흥강습소가 발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이 나중에 만주, 간도 일대에서의 무장 항일투쟁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30년대 기준으로 졸업생이 3500여 명이 되었으며 신팔균, 이범석, 지청천 등이 이곳에서 교관을 맡았으며 의열단 단장이던 김원봉도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었습니다. 신흥무관학교설립에 큰 힘이 되어주던 우당 이회영을 비롯한 형제들은 1910년에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습니다. 그리고 만주로 건너간 이회영은 같이 따라온 노비들을 해방시키며 이제 당신들은 종이 아니라 독립군이라 하였습니다. 이들 이회영의 가족은 이항복의 후예로 그..
2023.04.10 -
소설 심청전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우리나라의 고전소설 중에는 『심청전』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요. 그러면 심청은 소설 속의 허구인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청이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라도 곡성이 심청이 나온 배경이라는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졌으므로 그는 해안가 마을에 살았다고 생각할 것인데 의외로 곡성이란 곳은 내륙지방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온 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던 것일까요. 전남 곡성군 오곡면 송정리가 바로 심청마을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러면서 이 곳 사람들은 심청이가 자신의 동네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안에는 심청이가 마을 아낙네들한테 젖을 얻어먹었다고 하는 심청 우물이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이 우물은 마르지 않으니 심청이의 효심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2023.04.08 -
홍길동은 오키나와로 건너갔을까.
류큐는 지금은 일본 영토지만 4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독립왕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아무 관련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 섬에 조선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흔적에서 『홍길동전』의 주인공인 홍길동의 모델을 추정해봅니다. 역사학자 가데나 쇼도쿠는 청년시절 도서관 사서였습니다.그는 오키나와의 역사를 체계화시킨 인물로 1973년에 오키나와 현립 도서관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도서관사서로 있을 때 어떤 질문에 모른다고 했을 때 도서관 직원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핀잔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그는 50이 넘은 나이에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가 만든 역사지도에는 조선사신이 묵은 조선관, 제주마을, 조선인 묘지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2023.04.07 -
우왕은 공민왕의 아들이 맞을까.
아마도 다른 나라의 왕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나라 역대 왕조들의 왕들에게 중요한 일 중하나는 바로 아들을 낳아 자신의 왕위를 이어받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한 시점의 왕이 선대 왕의 아들 혹은 정당한 후계자 자격으로 왕위로 올랐는지 의심받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하고 간혹 이러한 의문이 더욱 커지게 되면 왕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고 급기야는 왕조도 바뀔 수 있는 문제로 커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의구심을 갖게 한 왕이 있습니다. 바로 우왕입니다. 우왕은 고려의 제 32대 국왕으로 공민왕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갖는 물음표는 바로 ‘우왕이 진짜 공민왕의 아들이 맞는가?’하는 것으로 이를 달리 말하면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 아닌가..
2023.04.06 -
제주도에 있던 삼별초는 정말 오키나와로 갔을까.
삼별초는 원래 무신 최씨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군대로, 처음 야별초에서 시작되었으며 야별초는 밤에 개경의 도둑을 잡고 백성의 난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야별초가 좌별초, 우별초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 몽골에 원한이 깊은 자들이 스스로 입대해서 만들어진 신의군이 더해져 삼별초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삼별초가 최씨 사병부대로 출발하였지만 몽골의 침입 때는 그들에 대항하여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고려정부가 원나라와 강화하자 고려는 삼별초의 철수를 요구했고 이에 응할 수 없었던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 그리고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며 저항합니다. 하지만 1273년, 여몽연합군을 공격을 받고 삼별초의 3여 년의 항쟁은 끝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김통정은 자결하고 휘하 ..
2023.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