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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시조 조상은 정말 신라인인가.
‘금나라의 시조는 휘(諱)는 함보이고 처음에 고려로부터 왔는데 나이 이미 60여 세였다. 형 아고내는 불교를 좋아해 뒤를 따르려 하지 않으며 고려에 잔류하면서 말하기를, “후세 자손들은 반드시 서로 모여 만나는 자가 있을 것이니 나는 가지 않겠다.”’ 이 이야기는 여진족에 세운 금나라의 역사를 다룬 『금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또한 홍호가 기록한 『송막기문』에는 이러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여진의 추장은 신라인이고 완안씨라고 불렀는데, 완안은 한언의 왕과 같다.’ 『송막기문』 또한 여진의 시조가 신라에서 나왔다는 기록은 더 있습니다. ‘신록기에서 기록하기를 여진의 시조 감포는 신라로부터 나와 아륵초객으로 달아났다. 돌아갈 곳이 없어 드디어 완안을 의지하였기에 이를 성씨로 삼았다. (중략) 여진의 여..
2023.04.04 -
덕흥리 고분 유주 자사 진의 출신은 어디인가.
덕흥리(德興里) 벽화무덤은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 구역 덕흥동 무학산 옥녀봉 남단 구릉에 자리잡은 고구려의 흙무지돌방무덤으로 지난 1976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무덤에는 무사도와 견우와 직녀 설화, 그리고 불교의 도입을 엿볼 수 있어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사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고분벽화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무사들의 모습이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엿볼 수 있으며 여인들이 나들이를 그린 그림에서는 주름치마와 햇볕가리개까지 묘사돼 상류층 부인들의 호사스런 생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408년이라고 하는 연대도 쓰여져 있으니 이는 학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꽃그림은 망자에 대한 불교의 내세관을 표현한 것인데 고..
2023.04.03 -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선과 미국에겐 거중조정이란.
1882년 조선은 처음으로 서양과 수교를 맺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조선을 대표해서 신헌과 김홍집이 앉았고 미국 측에서는 해군제독 출신인 슈펠츠가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청의 외교관인 마건충이 통역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이중통역을 통하여 조약의 첫 번째에는 상대국이 어려움을 당하면 반드시 서로 돕는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나라가 중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조선을 노리고 있던 주변국이 있었으니 그것은 러시아와 일본이었습니다. 만약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할 경우 이를 경유하여 중국으로 북진할 수 있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사실 조선과 미국의 인연은 이 때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이전에 신미양요가 ..
2023.03.18 -
사라진 고종의 돈 그리고 헐버트
1895년 조선은 을미사변을 겪었고 다음 해 2월에는 아관파천이 있었습니다. 암울한 조선의 현실, 이후 고종은 결단을 내립니다. 대한제국을 선포함으로서 조선은 왕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닌 중국과 대등한 자격을 갖춘 황제국임을 대내외에 알린 것입니다. 그리고 고종은 그동안 조선의 왕들이 입던 붉은 색 곤룡포 대신 황색의 곤룡포를 입습니다. 그러면서 고종 스스로도 과인이라 부르지 않고 짐이라 부릅니다. 고종 스스로 국격을 상승시킨 것입니다. 그러면서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구본신참에 입각하여 광무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리고 환구단에서 대한제국황제즉위식을 거행합니다.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원형의 공간으로 조선은 토지신과 곡물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종은 환구단을 설치하고 ..
2023.03.17 -
고종 뒤의 권력자 명성왕후
고종은 1863년 왕위에 올랐으니 당시그의 나이 12세였습니다. 그리고 고종은 아직 미혼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철종의 3년상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1866년에 되어서야 혼례를 올립니다. 그렇게 정한 고종의 배필이 바로 명성왕후입니다. 명성왕후의 아버지는 민치록이고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의 5대손이었습니다. 조선후기의 명문가였으나 민치록 대에는 이전의 위상보다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흥선대원군도 안동 김씨를 견제하기 위해 되도록 한미한 가문출신의 며느리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1866년 고종이 명성왕후와 결혼을 하게 되니 당시 나의 16세였습니다. 사실 명성왕후의 집안이 흥선대원군이 한미하다고 판단할 만큼 그 정도로 보잘 것 없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여흥 민씨는 태종 이방원의 부인 원..
2023.03.16 -
철종이 된 강화도령
조선의 25대 왕은 철종입니다. 강화도령으로 불린 그는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을까. 당시 왕위에 오를 수 있던 사람은 철종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남연군의 아들 흥선군 이하응 당시 30세의 나이였고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종손인 이하전으로 당시 8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은언군의 손자 이경응이 나이는 22살, 은언군의 손자 이원범이 나이 19세였습니다. 이 외에도 이하응의 형제들이 왕위에 오를 자격이 있었습니다. 왕위를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은 왕실에 있었고 그에 따라 이하전이 유력해 보였습니다. 그에 따라 이하전이 거의 내정되었다시피 되었는데 중간에 강화 도령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하전은 매우 영특하고 기개도 넘쳤기 때문에 차기왕으로 적합했을지 모르나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에게 필요한 것..
2023.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