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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유재란 현장 도산성 전투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의 정전회담이 결렬되면서 도요토미 정권 치하의 일본의 재침으로 이루어진 전쟁이었습니다. 1597년 8월에 시작된 전쟁은 이듬해 12월까지 지속되었으며 일본은 임진왜란에 있었던 과정을 교훈 삼아 전라도 지역을 점령하고 한양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일본의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의 수군을 궤멸시키고 보급로를 탄탄히 하기 위해 실행된 전라도 공략에 성공한 일본은 직산에서 조명연합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일본군은 이순신의 조선수군에 명량해전에서 대패하고 보급로의 단절을 우려한 일본군은 직산전투에서도 패하며 더 이상 북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군은 한반도 남해안에 성을 쌓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명연합군이 이렇게 쌓여진 왜성을 전쟁목표로 삼았습니다. 당시..
2023.01.01 -
임진왜란의 생생한 기록 임진왜정도
옛날 전투의 경우는 사진이 발명되지 않았을 만큼 그 모습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으며 유물이나 유적으로 가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생생한 전쟁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임진왜란의 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은 있으나 이것들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 후대에 그려진 것으로 당시의 모습을 찰나에 포착하여 담은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정도」만은 당시 종군화가가 참여하여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따라서 이 「임진왜정도」를 통해 당시의 생생한 전쟁의 모습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임진왜정도」의 배경은 전라남도 순천시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임진왜정도」는 원본을 촬영한 11장의 사진으로 당시 순천을 중심으로 한..
2022.12.31 -
백성들이 뭉쳐 이루어낸 승리 진주대첩
임진왜란의 많은 전투 중에 우리에게 빛나는 전투 중에 하나가 바로 진주대첩입니다. 일본군 정예병 3만을 상대한 조선군은 3천 8백 여명에 불과했고 아군은 관군과 백성들을 합친 숫자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승리는 일본을 여러모로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단 이 전투는 임진왜란을 진행한 일본군에게 있어 처음으로 겪는 대참패였고 전쟁을 계획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목소(木曾)의 목을 베어오라`고 명령했는데 목소는 목사를 뜻하는 말로 바로 진주성을 지킨 김시민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진주성 전투의 패배로 인해 일본군은 더 이상 서쪽으로 진격하지 못했고, 전라도는 일본군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분함을 느꼈던 일본은 8개월이 지난 1593년 다시 7만에 다하는 병력을 동원하여 진주성..
2022.12.30 -
12척의 배를 이끌고 승리, 명량대첩
우리나라 전쟁 역사상 가장 빛나는 전투 중 하나가 바로 명량해전입니다. 13척의 배만으로 133척의 왜선을 무찌른 기적같은 승리, 전투를 이끈 이순신조차도 천행(天幸)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천행(天幸)에만 맡겨질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조선군이 이길만한 요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벌어진 임진왜란, 여기서 일본의 예상치 못한 조선 수군의 해안권 장악과 의병의 활약, 그리고 명나라의 참전으로 수세에 몰렸습니다. 이에 일본은 조선을 배제한 채 명나라와 협상을 벌였으나 곧 결렬되고 이는 재침으로 이어지니 이것이 바로 정유재란입니다. 조선조정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균으로 하여금 일본의 수군을 격파하라고 하였으나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를 당하며 150여 척의..
2022.12.29 -
이종무의 대마도정벌
우리나라 역사에서 해외군사원정은 몇 차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루어지더라도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이나 조선 후기에 있었던 나선정벌처럼 주변강대국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전기 세종시기에 우리의 뜻으로 해외군사원정을 했던 적이 있으니 바로 대마도 정벌이었습니다. 그럼 조선은 왜 대마도에 대한 정벌을 해야 했을까. 왜구는 고려말 조선 초기에 한반도와 중국의 해안을 침략하며 괴롭혀왔고 이러한 왜구의 침략이 500여 차례에 달할 정도로 골칫덩이었습니다. 이에 세종은 대규모 원정함대를 구성하고 왜구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대마도를 정벌하기로 합니다. 쓰시마섬 혹은 대마도는 부산에서 최단거리 49.6km, 일본 후쿠오카에서 134km 떨어져 있는 섬으로 일본보다 우리나라에 가..
2022.12.28 -
임진왜란 조선화약무기 총통
조선시대 화약을 실어 사용한 무기를 총통이라 했는데 그러니까 일본군이 조총을 사용했을 때 우리는 총통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러한 총통은 어떤 무기였을까. 그리고 일본의 조총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총통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총통을 만들었을 때에는 활을 보조하는 무기였습니다. 처음 대나무 마디처럼 일정한 분사형의 총통을 만들어 그 속에 화약을 집어넣고 화약이 약실에서 폭발하는 힘으로 앞으로 투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이나 고려의 주 무기가 편전인데 이것을 총통 안에 넣어서 화약의 분출물에 의해서 투사를 시키는 것이 총통의 처음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검이나 활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했으므로 조선의 세종은 이 무기의 개발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세종은 한글을 직접 창제하고 조선 과학을 발전시키..
2022.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