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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속 이몽룡은 실재했을까.
우리나라 고전문학이 대표작 중 하나인 『춘향전』은 조선 숙종 대 이후에 씌어진 소설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살아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영화와 드라마 뿐만 아니라 뮤지컬, 발레 등 다양한 문화장르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는 춘향과 몽룡의 사랑은 물론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신분제도와 탐관오리에 대한 비판, 그리고 권선징악과 더불어 역경과 고난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들이 행복한 결말이 들어 있어 현대의 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이라는 구절은 춘향전을 노래한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으로 익히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럼 이러한 춘향의 이야기는 소설인만큼 허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흥미를 끄는..
2023.01.07 -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
『음식디미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조리서로 17세기 조선의 음식문화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음식조리정장발효에 관한 책이자 146가지의 요리에 과한 조리법을 담은 책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책은 17세기의 책이므로 지금과는 다른 요리의 모습은 물론 지금은 사라진 요리도 담고 있어 그 가치가 큰 책입니다. 특히 ‘식재료를 보관하는 방법을 썼다.‘라는 점이 조리과학적인 측면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책이자 한식의 뿌리 원형을 제공하는 책으로 그 가치가 중요한 서적입니다. 장씨부인이 쓴 『음식디미방』은 규곤시의방이라고 하는데 장씨부인의 남편인 석계 이시명이(혹은 저자의 후손들이) 이 책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규곤시의방』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규곤’이라는 말은 여성들이 거처하..
2023.01.06 -
18세기 초반 제주도의 모습 탐라순력도
2022년 현재 제주도에서 국보로 추진하고 있는 보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탐라순력도입니다. 탐라순력도는 조선시대 지방관의 순력을 그린 국내 유일의 기록화첩으로 남아 있으며 당시 이형상 제주목사가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순력과정을 그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1703년에 완성된 이 화첩은 그림 41면과 서문 2면 등 총 43면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림 41면은 순력 행사 장면을 담은 그림 28면, 평상시의 행사 장면을 담은 11면, 제주도와 주변 도서 지도인 「한라장촉」, 후에 덧붙여진 「호연금서」 1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탐라순력도가 소중한 이유는 희귀할 뿐만 아니라 18세기 초 제주도의 사회상을 그대로 담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탐라순력도를 통해 제주도의 지리·지형은 물론 관아, ..
2023.01.05 -
조선시대에도 온실이 있었다.
冬月開花出於人爲子(동월개화출어인위자). “겨울 달에 핀 꽃은 인위(人爲)에서 나온 것이다.” 『성종실록』 1471년 1월의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궁에는 꽃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장원서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키운 영산홍을 바치자 왕은 풀과 나무는 천지의 기운을 받고 자라는 것으로서 그 시기가 있는데 제 때에 피지 않은 것은 인위적인 것으로 자신의 취향과 다르다 하여 바치지 말라고 한였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바로 임금의 취향이 아니라 바로 한 겨울에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겨울에도 꽃과 작물이 가능한 시대였지만 먼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1471년 즉, 15세기의 기록이니 서양에서 온실을 사용했다는 독일의 기록에 1619년보다 훨씬 앞선 것입니다. 과연 조선에서..
2023.01.04 -
안타깝게 져버린 조선의 개혁가 조광조
‘대사헌께서 벼슬을 한지 3년인데 세상 풍기가 많이 변했습니다. 청탁하는 것, 뇌물 주는 관행이 끊어졌으니 대감을 노리는 자들이 많을 겁니다.’ 이 대감은 바로 조광조입니다. 벽초 홍명희가 쓴 소설 『임꺽정』의 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 장면 이후 조광조는 유배를 갑니다. 이에 선비들이 반발합니다. 당시 조광조는 개혁의 아이콘으로 여겨졌으므로 당시 조광조의 유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조광조가 개혁정치의 핵심으로 생각한 것은 언로통색론(말길이 통하면 흥하고 막히면 망한다.), 즉 언로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벼슬직에 나아가 처음 맡았던 자리는 언관의 자리로 이 자리는 임금에게 간언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벼슬직에 처음 나아가 맡았던 자리이니만큼 임금에게 간언하는 벼슬이 형식상 자리로 보일 수 있..
2023.01.03 -
임꺽정은 왜 도적이 되었나.
유명한 도적이 있었다는 것은 해당 시기가 평안하지 않은 시대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홍길동, 장길산, 임꺽정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부정부패가 심했다는 것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중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가 고향으로 어떠한 과정으로 도둑이 되었는지는 잘 알려진 바 없습니다. 다만 위와 같이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먹고 살기 힘든 현실적인 문제가 부딪혀 도적이 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그에 대해서 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록에 따르면 임꺽정은 날쌔고 용맹스러우며 교활한 면이 있는 인물이라 했으며 그와 함께한 도둑들도 모두 민첩하고 잔인했다고 합니다. 사서의 기록이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실록에 대한 그의 첫 기록은 바로 성의 포도군관 이억근이 임꺽정을 추..
202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