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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은 정말 모반을 꾀했나.
조선 시대 전주에 살던 정희증의 부인이 아이를 갖게 되었고 그즈음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는 꿈속에 정중부를 보게 되었고 그는 이 일로 찜찜하게 여겼다고 하는데 역시 그 아이가 태어날 때도 비슷한 꿈을 꾸어 친구가 아이를 낳아 축하해 주었을 때도 수심이 얼굴에 가득찼다고 합니다. 이후 이 아이가 자라나 7~8세가 되었을 때 여러 아이들과 놀면서 까치 새끼를 잡아 주둥이에서 발까지 뼈를 부러뜨리고 살을 찢었는데 이를 안 여종이 사실대로 희증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아이는 앙심을 품고 여종의 부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여종을 칼로 찔러 죽이고 이후 여종의 부모가 와 통곡하니 아이는 오히려 ‘내가 한 짓이니 괴이하기 여기지 말라.’는 말을 하여 주위를 섬뜩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 희증은 아이..
2022.12.26 -
조선의 궁녀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1420년인 세종 2년 1월 9일에 왕은 인덕궁에 있는 여인들의 생활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하고 대신들에게 물으니 한 대신이 월급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고 이에 왕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식사와 함께 개인 몸종인 방자와 밥해주는 취반인, 물긷는 사람인 무수리를 붙여주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왕이 편의를 봐준 이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궁궐의 모든 살림을 담당했던 정 5품의 상궁과 상궁 하위직급 시녀를 포함한 그들, 바로 궁녀였습니다. 궁녀는 내명부 품계를 받은 조선 유일의 여성공무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왕족을 보필해야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선발기준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속대전』 형전 공천조에서는 ‘궁녀는 직 여러 관서에 소속된 관노비로 뽑아 들인다. 양인 여성을 일절 논하지 않는다.’고 ..
2022.12.25 -
조선시대에 역관이 되려면
태조 2년인 1393년 9월 19일 조선은 사역원을 설치하고 중국말을 익히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은 건국하면서 외교정책으로 사대교린정책을 썼기 때문인데 이 정책은 중국을 사대하고 그 주변의 이웃나라하고는 사귄다는 내용으로 이러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역할 사람, 즉 역관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이전 고려시대에는 외교는 중요했고 따라서 역관을 양성하는 학교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이 충분하지는 않으며 고려 충렬왕 때에 통문관이라는 기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 기관이 태조 2년에 사역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갑오경장(1894년)에 폐지되기 전까지 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역원은 역관을 양성하는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으로 외교를 위해서는 역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선은 국가차원에서..
2022.12.24 -
조선의 저팬타운 삼포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 일본인이나 일본계 사람들이 밀집하여 사는 지구를 저팬타운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그러한 저팬타운이 있었으니 그 곳은 바로 조선 속의 왜인촌이라 불리던 삼포라는 곳으로 삼포는 제포와 염포, 부산포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삼포에 정착하여 사는 왜인들을 항거왜인이라 불렀습니다. 특히 이러한 조선의 삼포와 연관이 많은 곳은 바로 대마도였습니다. 이곳은 산지가 97%인 곳으로 경지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육지와 교역을 해서 물자를 충당해야 했는데 일본보다도 부산이 더 가까웠던 섬입니다. 그래서 대마도에 살던 사람들 중 조선의 물자를 약탈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왜구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왜구들은 조선뿐만 아니라 명나라 해안까지 출몰하였고 조선과 명나라는 일..
2022.12.23 -
바다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운반선
지난 2003년의 일입니다. 군산시 옥도면 십이동파도 근해에서 청자운반선이 침몰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선체는 잔존 길이가 7m, 폭이 2.5m 정도이며 주재료는 소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04년에는 청자유병 등 도자기 2184점과 닻을 고정하는 닻줄과 닻돌로 보이는 닻 부속구도 인양되어 지금까지 군산 십이동파도에서 인양된 유물은 최초 신고 622점, 긴급 탐사시 인양 667점, 1차 발굴인양 5266점, 2차 발굴인양 2184점 등 총 8739점의 도자기와 선체 14편이 인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이 선박에 대해 11세기말경 선박으로 추정하였습니다. 또한 2007년에는 충남 태안군 근흥면 대섬 앞바다에서 청자완 등 고려청자를 다량 실은 운반선이 발견돼 54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
2022.12.22 -
고려인 이슬람교도 라마단
세계 3대 종교인 이슬람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현대의 대한민국사회에서도 이슬람교인들은 낯선 존재인데 교회나 절, 성당과 달리 이슬람사원은 극히 적고 신도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온 이슬람교 국가사람들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 이보다 앞선 시대에는 이 땅에 이슬람의 흔적은 적다고 생각하지만 생각 외로 그 발자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남북국시대의 신라에서는 처용이 아랍인, 경주 괘릉에는 서역인의 얼굴상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들이 이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초에는 이슬람은 회교(回敎), 또는 회회교(回回敎)라 했는데 고려초 팔관회에 회회교도가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신라 말기에 회교신자가 이 땅에 들어왔을 거라 짐작합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 이슬람에 대한 구체적인 ..
202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