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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릉이 알려주는 사실
충청남도 공주시는 백제의 수도였습니다. 따라서 많은 무덤들이 있는데 왕과 귀족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큰 무덤입니다. 무덤이 발견될 당시의 행정구역 명칭을 따서 무덤이름을 지었는데 그리하여 명명된 송산리 고분군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무덤들은 굴식돌방무덤의 양식을 띄고 있습니다. 시신을 넣은 나무 관이 있는 널방을 돌로 쌓아 만든 다음에 외부로 통하는 통로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씌운 양식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도굴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단서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동네 이름이나 나온 유물에 따라 무덤의 명칭이 붙였습니다. 1971년 초, 송산리 고분군 중 5호분과 6호분으로 빗물이 흘러내려 무덤에 물이 찰 우려가 있어 ..
2022.06.29 -
안악 3호분은 누구의 무덤인가
1949년 북한 황해도 안악군에서 안악3호분이 발견되었습니다. 발견된 안악 3호분 속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덤의 주인과 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 부엌과 우물, 도축실, 외양간, 마차를 넣어두던 차고와 도끼를 들고 있는 무사, 수박희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병과 보병, 악사들의 행렬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벽화의 부엌에서는 부뚜막 위에 큰 시루를 얹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떡을 찌고 있어 당시의 생생함을 전달하고 있는데요. 벽화에는 서역인들도 표현되어 있으며 당시 활발했던 고구려의 대외교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관심이 쏠렸고 현재도 정확도 무덤의 주인에 대해서는 추측이 오고 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 무덤에 ..
2022.06.28 -
백제의 산수와 이상향을 품은 산수무늬벽돌
우리나라에서 세계 각국의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요. 국가 간에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면서 해외문화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 역시 해외에 잠시 반출되어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럼 해외에 가장 많이 반출된 우리나라 문화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보물로 지정된 부여 외리 문양전입니다. 이름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백제 산수무늬벽돌이라고 불리는 유물이 포함된 것입니다. 이 유물들은 비교적 단단하고 치밀한 바탕흙을 사용하였으며 문양을 양각한 것이 특징입니다. 벽돌의 성격이나 제조법을 미루어 볼 때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일본 오사카에 출토된 봉황문전 등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
2022.06.27 -
보물이 된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수막새
옛날 사람들은 아시다시피 기와집이나 초가집에서 살았습니다. 기와나 초가집이라 부르는 이유는 지붕을 잇는 재료에 따라 그렇게 나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기와집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요.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기와를 만들어 지붕을 이었다고 합니다. 이 기와라는 것은 지붕을 잇는데 쓰는 것으로 기와는 빗물을 흘려버려 물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상들은 빗물이 흘려보내서 물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양에 대해 궁리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물결모양의 파상형이나 원형, 반할, 3할, 반월형 등을 주로 제작,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와의 종류에는 암기와와 수기와가 있으며 바닥에 까는 넓은 것은 암기와, 위에 덮는 좁은 것은 수기와라고 부릅니다. 암기와를 지붕에 ..
2022.06.26 -
두 명의 고구려왕과 결혼한 우씨 왕후, 형사취수제 때문?
고대와 현대 사이에는 결혼식 문화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고구려에서는 형사취수제라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형이 죽으면 형의 아내를 동생이 취하는 제도로 지금은 가정조차 할 수 없는 제도입니다만 고대 국가 시기에는 남자가 전쟁에 나가 죽거나 돌연 사망하는 일이 많았고 따라서 여자가 과부가 될 경우 노동력 이탈로 이어질 수 있었고 노동력이 중요했던 농업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했기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가임기 여성을 과부로 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큰 손실이었기에 이런 제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구려에서 형수와 시동생의 관계는 예비적인 배우자의 관계 내지는 잠재적인 미래의 부부관계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성적인 면에서는 유보된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2022.06.25 -
가야 고분 순장 풍습 그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
순장은 어떤 죽음을 뒤따라 다름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주된 시체와 함께 묻는 장례 습속이라고 합니다. 흔히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남편이 죽었을 때 신하나 아내가 그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고대국가에서도 행해졌던 이 의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고대국가에서도 행해졌습니다. 중국의 상나라에서는 많은 청동기 등의 껴묻거리와 함께 많은 사람을 죽여 순장을 하였으며 고대 오리엔트, 이집트, 유럽과 아프리카 고대사회에서도 순장 풍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노동력과 처첩의 인격이 중요시되면서 차츰 없어졌으며 대신 이를 대신하는 물건들을 넣기도 한 것입니다. "부여는 사람을 죽여 백 명까지 순장시켰다."-삼국지 위서 동이전- "248년 고구려 동천왕이 죽자 새 왕(동천왕)의..
2022.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