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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 그 진실은
국경을 초월한 사랑, 옛날에도 있었을 이러한 사랑은 설화로서 그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무왕과 선화공주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부여의 남쪽 어느 마을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집 앞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커다란 용이 나타났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자는 방에 들어와 입에 물고 있던 커다란 여의주를 뱉어놓았습니다. 여인은 놀랐지만 침착하게 그 여의주를 받아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여인은 용과 사랑을 나눈 것입니다. 그리고 열 달 후 사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서동이라 하는데 마를 파는 아이라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매우 똑똑하고 용감한 서동은 어려운 살림에도 마음씨가 착해 늘 다른 사람들을..
2022.07.05 -
강한 고구려의 원동력 개마무사
“왕은 보기병 2만을 인솔하여 비류수 위쪽에서 방어하며 적 3000명을 죽였다. 철기 5000을 인솔하여 적을 토벌했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옛 기록에 나와 있는 고구려가 위나라의 군대를 격파한 내용입니다. 이 기록에 보면 철기 5000이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바로 개마무사입니다. 이 개마무사는 철갑기병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마무사는 긴 기병창(삭)을 주무기로 사용했으며 보조무장으로 환두대도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고구려인들이 사용한 창은 평균길이가 5.4m이고 무게는 6~9킬로그램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중국의 것보다 1m가량 더 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창을 삭이라 불렀고 이 삭을 든 사람은 갑옷으로 무장했습니다. 그들이 착용한 갑옷은 비늘 모양의 가죽 조각이나 쇳조각이라는 의미..
2022.07.04 -
신라의 황금보검은 어디서 왔을까
미추왕릉지구의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길이 36cm의 황금장식보검은 이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모양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해외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황금보검은 반타원형의 칼자루에 끝이 넓은 칼집 그리고 금알갱이와 옥으로 상감한 이 보검은 우리나라는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합니다. 양식기법이나 나선무늬와 메달무늬 등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그리스로마무늬는 이 보검의 출처가 로마나 혹은 그 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곳에서 전달받은 곳으로 추측하게 합니다. 그럼 이러한 보검이 어찌되어 신라에서 발견되었을까. 일본학자 요시미즈 쓰네오는 이 보검의 제작지를 로마문화와 밀접한 곳으로 연결시켜 일찍부터 그리스·로마 문화를 받아들인 다뉴브강 남부 트라키..
2022.07.03 -
중원고구려비가 알려주는 이야기
옛날에 마을 입구에 돌 하나 혹은 둘, 여러 개가 세워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돌을 자신의 마을을 지켜준다고 생각하여 소중히 여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돌에다가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빌거나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였는데요. 이러한 돌을 선돌, 혹은 입석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이러한 돌은 전설도 수반되어 있어 부락민들에 의해 신격화되기도 해서 불가침 구역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흔히 있는 거석문화라고 합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에 있는 한 마을 입구에도 이러한 돌이 서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입구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이 마을은 입석마을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돌은 마을 사람들은 소중히 여겼던 것 같은데요. 1972년에는 마을에 큰 홍수가 나서 쓰러..
2022.07.02 -
광개토대왕릉비 신묘년 기사의 진실은
우리 나라 역사 속에서 많은 왕들이 있었고 그 중 아직도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왕들은 해당 국가의 전성기를 이끌면서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며 안으로는 백성들의 삶도 태평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가 있던 시절 각 나라마다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 있었으니 고구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광개토대왕입니다. 사실 광개토대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고구려가 강대한 나라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광개토대왕이 왕이 되기 50년 전에는 연나라가 침입해 백성 5만 명을 포로로 잡아갔고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은 백제와의 전투 중에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기근이 덮치면서 백성들은 살기 어려웠습니다...
2022.07.01 -
서봉총 금관에 담긴 안타까운 이야기
일제 시대 때 일본학자들에 의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경주에 소재한 서봉총도 역시 일본이 발굴했는데요. 하지만 일본의 문화유산이 아니라서 귀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발굴된 유물들을 정리하지도 않았고 발굴보고서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무덤은 90년의 시간이 흘러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무덤 둘레돌에서 큰 항아리 27점이 발견되고 항아리 안에서는 물고기의 조개류의 유체가 7천 7백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분석한 결과로는 가을에 많이 잡히는 청어와 방어 등 온갖 종류의 생선으로확인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돌고래와 복어, 성게 등 귀한 음식도 있었고 민물 거북의 일종의 남생이 껍질도 나왔습니다. 이로써 이 무덤의 주인인 신라의 지배층은 아주 좋은 식생활을 ..
2022.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