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백제(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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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 백제가 있었을까
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갈라져나온 나라입니다. 그리고 3세기 후반에 쓰여진 『삼국지』「동이전」에는 마한 54개국 중에 ‘백제국’이 있는데요. 만주에서 내려온 세력이 마한연맹의 하나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마한의 맹주는 목지국이었습니다. 그러면 마한연맹의 백제는 목지국보다 약한 세력이었을 것입니다. ‘처음에 부여는 녹산(鹿山)에 거처했는데. 백제의 침략을 받아 부락이 쇠산(衰散)해져서 서쪽으로 연(燕)나라 근처로 옮겼으나 방비를 하지 않았다.’ 『자치통감』 기원후 346년의 일을 기록한 글입니다. 여기서 부여의 발상지인 녹산은 송화강 유역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는 한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여러모로 기록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상식을 대입해 보았을 때 뭔가 ..
2023.07.30 -
백제 초기 수도 위례성은 어디인가
백제의 건국설화는 고구려와 신라의 것과는 달리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백제의 초기도읍지는 위례성(慰禮城) 또는 한성(漢城)은 백제입니다. 하지만 비교적 현실적인 건국설화에 비해 백제가 처음으로 도읍한 위례성에 대해서는 그 위치가 분분합니다. 그럼 위례성은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사실 이것도 그 다양한 설이 존재합니다. ‘위례’ 가 방어시설이자 담장을 가리키는 ‘우리 울’, 성책을 세우고 흙을 쌓아 만든 위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역사상 최초의 국가형태인 성읍국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혹은 ‘왕성’을 뜻한다는 견해, 동족이나 씨족을 의미하는 ‘우리’에서 유래한 것을 보기도 하며 강변에 소재한 성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혹은 ‘큰 성’을 뜻하는 것을 보기도 하는데..
2023.07.29 -
백제계 영웅인가. 배신자인가. 흑치상지
지석이란 죽은 사람에 대한 사실을 기록해 무덤에 묻은 판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지석에는 조상의 계보, 생일과 죽은 날, 평생의 행적, 가족 관계, 무덤의 소재와 방향 등이 기록되며 무덤 앞이나 옆에 묻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덤의 주인에 대해 사실관계를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1929년 중국 하남성 낙양시 북쪽에 있는 북망산에서 백제인의 지석이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흑치상지와 그의 아들 흑치준의 지석입니다. 흑치상지란 사람은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로 그의 집안은 대대로 달솔, 즉 지금의 국방부차관에 해당하는 벼슬을 했던 나름 왕족집안의 출신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현덕이었고, 아버지는 사차였으며, 모두 달솔을 지냈습니다. 상지는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었고, 동작이 빠르고 힘이 세고 꾀가 ..
2023.01.22 -
백제창왕명 사리감 그리고 위덕왕
왕흥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로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07년에는 이곳에서 의미 있는 발견이 있었습니다. 왕흥사 목탑 터에서 황금사리병이 발굴되었는데 청동 사리함의 몸체에는 '정유년이월십오일백제왕창(丁酉年二月十五日百濟王昌)’이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정유년은 창왕의 재위 기간 중인 577년이었습니다. 따라서 발견된 황금사리병은 현재까지 출토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도된 것이며 백제사리병으로 온전하게 발굴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발굴 당시 황금사리병은 은으로 만든 사리 외병에 봉안됐으며 은제사리병은 다시 청동사리함에 담긴 채로 출토되었습니다. 청동사리함은 목탑의 기둥을 세우는 장치인 심초석 하단에 마련된 사리안치용 석제의 한쪽 끝에 뚫린 사리공에 봉안돼..
2022.12.08 -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상
마애불이라는 것은 암벽에 새긴 불상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불상은 2~3세기 인도에서 석굴사원을 조상하며 시작되었는데 이 후 서역과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해졌고 우리에게 알려진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상도 만들어진 것도 이 때이니 서기 6세기였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석불로 알려진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로 이 불상은 높이가 52.6m, 34.5m의 거대한 2개의 불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 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가 이슬람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로켓탄으로 불상을 파괴하기도 하였습니다. 백제의 미소로 자리 잡은 마애불상은 신라에서는 경주 남산의 칠불암 마애불상군, 신선암 마애보살상, 용장사지 마애불좌상 등을 남겨졌고 고려 때는 그 크기가 거대한 17.7m의 파주 용미리 마애불로 조성되었습니다. ..
2022.12.03 -
최초의 한류는 백제류
7세기 아스카시대를 대표하는 걸작 불상으로 ‘백제관음상’이 있습니다. 일본 나라 호류지에 있는 이 불상은 높이 210㎝, 팔등신 늘씬한 몸매, 정병을 살포시 쥔 왼손, 앞으로 내민 오른손의 굴곡까지 유려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본래 이름은 허공장보살이라고 하는데 ‘백제관음’이라 불리게 된 건 불과 100년밖에 안되었다고 합니다. 이 불상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은데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며 1698년의 기록에는 인도에서 만들어져 백제를 통해 건너왔다고 합니다. 이 불상은 1911년 호류지 창고에서 발견되었는데 당시 일본학자들은 이 불상을 조선양식으로 보았고 1919년 철학자 와쓰지 데쓰로(1889~1960)가 쓴 『고사순례』에 '우리 백제관음상'이라 불렸습니다. 하지만 이름 때문인지 백제에서 ..
202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