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백제(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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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 창건한 무왕의 왕비는 누구인가
백제 무왕은 제 30대 국왕으로 최초의 향가 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백제는 신라에게 한강유역을 내주고 관산성 전투에서 패한 적이 있었고 이에 따라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제 무왕 시기에는 신라를 여러 차례 공격하였습니다. 집권 초기인 무왕 3년인 602년에는 아막산선을 공격하니 그것이 바로 아막산성 전투입니다. 당시 백제의 평상시의 병력은 6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잃은 병력은 4만이었으니 백제 입장에서는 타격이 큰 전투였습니다. 하지만 무왕은 이로 인한 혼란을 권력 강화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하나는 왕궁평성의 운영이고 다른 하나는 미륵사를 창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미륵이라는 무엇일까. 미륵은 본래 석가모니불의 친구라는 ’미트라‘에서 유래하였습니다. ..
2022.07.06 -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 그 진실은
국경을 초월한 사랑, 옛날에도 있었을 이러한 사랑은 설화로서 그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무왕과 선화공주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부여의 남쪽 어느 마을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집 앞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커다란 용이 나타났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자는 방에 들어와 입에 물고 있던 커다란 여의주를 뱉어놓았습니다. 여인은 놀랐지만 침착하게 그 여의주를 받아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여인은 용과 사랑을 나눈 것입니다. 그리고 열 달 후 사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서동이라 하는데 마를 파는 아이라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매우 똑똑하고 용감한 서동은 어려운 살림에도 마음씨가 착해 늘 다른 사람들을..
2022.07.05 -
백제 무령왕릉이 알려주는 사실
충청남도 공주시는 백제의 수도였습니다. 따라서 많은 무덤들이 있는데 왕과 귀족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큰 무덤입니다. 무덤이 발견될 당시의 행정구역 명칭을 따서 무덤이름을 지었는데 그리하여 명명된 송산리 고분군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무덤들은 굴식돌방무덤의 양식을 띄고 있습니다. 시신을 넣은 나무 관이 있는 널방을 돌로 쌓아 만든 다음에 외부로 통하는 통로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씌운 양식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도굴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단서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동네 이름이나 나온 유물에 따라 무덤의 명칭이 붙였습니다. 1971년 초, 송산리 고분군 중 5호분과 6호분으로 빗물이 흘러내려 무덤에 물이 찰 우려가 있어 ..
2022.06.29 -
백제의 산수와 이상향을 품은 산수무늬벽돌
우리나라에서 세계 각국의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요. 국가 간에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면서 해외문화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 역시 해외에 잠시 반출되어 소개되기도 합니다. 그럼 해외에 가장 많이 반출된 우리나라 문화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보물로 지정된 부여 외리 문양전입니다. 이름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백제 산수무늬벽돌이라고 불리는 유물이 포함된 것입니다. 이 유물들은 비교적 단단하고 치밀한 바탕흙을 사용하였으며 문양을 양각한 것이 특징입니다. 벽돌의 성격이나 제조법을 미루어 볼 때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일본 오사카에 출토된 봉황문전 등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
2022.06.27 -
백제는 요서에 진출했을까.
우리가 역사시간에 백제의 전성기를 접하고 나면 백제가 해외진출을 하였다면서 요서로 화살표가 표시된 지도를 접하게 됩니다. 과연 이러한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일까요. “근구수왕이 바다를 건너 중국 대륙을 경략하여, 선비족 모용씨의 연나라와 부씨의 진나라를 정벌, 오늘날의 요서, 산동, 강소, 잘강 등지를 경략하여 광대한 토지를 장만하였다.” 『조선상고사』-신채호- “문헌통고에 의하면 ‘당시에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공략하여 차지하자, 백제 또한 요서, 진평을 공략하여 차지하였다’고 한다.”『동국문헌비고』 “당시 백제가 점령한 곳은 당나라 때의 유성과 북평 사이의 지역이었다.””『문헌통고』(1391년 중국 송나라 때 편찬된 백과전서) 일제 강점기 시대의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물론 중국의 문헌에서..
2022.06.23 -
백제에서 건너온 일본유학의 아버지 왕인
"백제 왕이 (일본에) 아직기를 보내 좋은 말 2필을 바치니 아직기에게 말을 돌보게 하였다. 그런데 아직기가 경전을 잘 읽었으므로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왕이 아직기에게 '그대보다 더 나은 박사가 또 있는가?'하고 물으니 아직기는 '왕인이 뛰어납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곧바로 백제에 사신을 보내 왕인을 초빙했다. 왕인은 태자의 스승이 되어 여러 경전들을 가르쳤는데 태자가 배우는 데 막힘이 없었다. 왕인은 서수의 시조이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고대사를 기록한 역사책 『일본 서기』에 실린 백제 박사 왕인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왕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태자의 스승으로 학문을 가르치고 천자문과 논어를 전할 만큼 학식이 뛰어난 사람으로 그의 이름 뒤에 붙는 박사란 칭호는 백제에서는 어느 한 분야에서 독보적..
2022.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