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백제(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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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계획도시 사비
475년 한성백제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웅진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이 곳은 475년부터 538년까지 백제의 도읍으로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문주왕이 암살되었고 동성왕 역시 귀족들의 세력 다툼 속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웅진이란 곳에서 백제의 왕이 살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왕의 피살 사건과는 달리 백제의 금세공술은 최고수준에 올라왔고 백제의 백성들의 삶은 안정권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웅진시절의 무령왕의 백제는 양나라와 교류를 하며 국력을 과시하였습니다. ‘백제는 고구려를 여러 번 격퇴하고 다시 강국이 되었다.’ 『중국 양서 백제전』 그리고 이러한 무령왕의 뒤를 이어 성왕이 뒤를 이으니 『삼국사기』에서는 지혜와 식견이 영특하고 일에 결단성이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
2022.11.18 -
일본 땅에 핀 백제문화 아스카
규슈지역으로 들어온 백제인들은 더 좋은 땅을 찾아 동쪽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바로 일본의 나라와 오사카 일대입니다. 나라지역은 일본을 최초로 통일한 야마토정권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백제인들은 크게 활약하며 현재까지 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럼 오사카 일대에는 어떠한 백제인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을까. 일단 이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백제인들의 자취는 현재 축제로도 남아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천왕사왔소’축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사카에서는 ‘백제교’, ‘남백제 보도교’, ‘오사카 백제역’ 등 이 곳에 백제인이 와서 살았음을 현재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온 것뿐만 아니라 마을을 이루어 살며 문화를 전파하였고 그 영향이 지명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
2022.11.16 -
백제인은 왜 일본에 마을을 만들었을까.
백제는 660년에 멸망하였습니다. 고구려도 이후 망했지만 고구려유민들이 고구려가 망한 자리에 나라를 세우니 그것은 바로 발해였습니다. 백제도 역시 이러한 자신들만의 나라건설을 꿈꾼 건 아니었을까요. 백제는 그것을 자신들이 예로부터 문화를 전수해준 곳으로 터전을 옮기어 실현해 나갑니다. 그곳은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한반도와 일본열도간에 교류는 오래전부터 잇어왔습니다. 이다즈케 유적지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일본최초의 농경문화가 시작된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한반도의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기원전부터 한반도인들이 농경문화를 가지고 온 곳으로 한국의 울산 금단리, 부여 송국리 선사유적과 관련되어 지는 곳입니다. 이 외에도 요소노가리라는 유적지는 한반도의 청동기와 철기 문화를 받아들인..
2022.11.15 -
백강전투에 왜가 지원한 이유는...
백제가 멸망한 것은 660년, 의자왕이 항복하고 의자왕과 신료 93명, 그리고 백성 12000여 명이 당나라로 끌려갔습니다. 그렇게 역사에서는 백제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지만 당시 백제의 지도부와 관료들은 이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백제 장수 복신(무왕의 조카)과 승려 도침이 주류성을 거점으로 저항했다.’ 『삼국사기』 백제 땅 각지에서 부흥운동 움직임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백제 왕족인 복신과 승려 도침, 그리고 흑치상지 장군이 있었습니다. 복신과 승려 도침이 중심이 된 백제부흥군은 사비성을 공격하여 곧 회복하였고 복신은 사신을 통하여 당시 왜에 있던 의자왕의 아들 풍을 보내주도록 왜에 요청합니다. 그리고 부여 풍은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임존성에서는 흑치상지의 지휘 아래 나당연합군을 물리치..
2022.11.07 -
의자왕에게 삼천궁녀가 있었을까
백제의 마지막 왕은 의자왕입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의자왕은 주색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한 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삼천궁녀 그리고 낙화암이 있기 때문입니다. 낙화암과 삼천궁녀는 백제의 마지막 왕에게 나쁜 이미지를 덮어씌우기에 충분했으며 망국의 왕의 대명사로 의자왕이 우리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의자왕은 백제의 마지막 왕이기 때문에 백제가 멸망하였을 때 어떤 식으로는 영향을 미쳤을 인물입니다. 의자왕이 정치를 잘했든 못했든 말입니다. 그런데 역사란 것은 오해란 것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과연 삼천궁녀가 백제에 존재했을까입니다. 아마 어린 친구들에게는 백제의 의자왕에게는 삼천궁녀가 있었다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고 의자왕에게 삼천 명의 여자..
2022.07.23 -
백제최고 걸작 백제금동대향로
향이란 것은 인류가 일찍부터 사용한 것으로 고온다습한 기후인 인도에서 향이 크게 성행하였습니다. 향을 사용하는 방법 중에 향을 불사르는 방법이 있고 그에 따라 향을 담을 그릇이 필요했으니 그것이 바로 향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향로가 옛 낙랑지역에서도 발견되었으니 꽤 오래전부터 향로는 조상들의 일상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도 불교에서 보살에게 향을 공양할 때 향로가 쓰이므로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향로의 제작과 사용이 널리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삼국시대 후반쯤이면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던 1993년 12월 12일 능산리 고분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주차장을 건설하는 중에 450점이 넘는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유물들은 칠기로 만들어진 장방형 목곽수조안..
2022.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