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백제(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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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북위 전쟁 진실 혹은 거짓
‘이 해에 북위 오랭캐가 또다시 기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지경에 들어가니 모대가 장군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를 파견하여 오랑캐 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건무 2년, 모대가 사신을 보내와 표문을 올려 말하길, 신은 봉작을 받은 이래 대대로 조정의 영예를 입었고 …(중략)…지난 경오년(490)에는 험윤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히 쳐들어왔습니다. 신이 사법명 등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거꾸로 쳐서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흉리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말을 몰아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베어 죽이니 그 시체가 평원을 붉게 물들이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예기(銳氣)가 꺾이어 고래처럼 사납던 것이 그 흉포함을 감추었..
2023.08.11 -
한성백제 종언 개로왕 피살
비유왕은 죽고 나서 왕위를 이은 개로왕이었습니다. 개로왕(蓋鹵王)은 백제의 제21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455년~475년입니다. 비유왕은 그의 죽음은 흑룡과 관련되어 기술되어 있는데 비유왕의 죽음 시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따라서 개로왕의 등극도 순탄치 않았을 것입니다. 개로왕 초기 14년간의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임시로 매장되어 있던 부왕의 뼈를 개로왕 21년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장사지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의심스러울 수 있는데 비유왕 시기 해씨세력이 워낙 강하였고 이를 제어하지 못하여 비유왕은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비유왕 사후 해씨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개로왕을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해씨가 제압당했던 것 같습니다. 백제가 혼란을 빠져있다고 생각했는지 455년 1..
2023.08.10 -
구이신왕과 목만치 비유왕과 제라동맹
구이신왕은 제 19대 왕으로 전지왕의 아들이며 그의 어머니는 팔수왕비입니다. 구이신왕은 전지왕의 왜국에서 백제로 귀국할 때 혈례가 왕위를 찬탈하는 바람에 귀국에 늦어져 섬에 머물렀던 405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420년 16살의 일입니다. 왕위에는 약 8년간 재위했으나 즉위와 사망 외에 별다른 기록이 없었습니다. 물론 워낙 오래된 일이라 사료가 충분치 않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8년이라는 재위기간을 생각하면 그에 대한 기사는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25년에 백제의 직지왕이 죽었다[薨]. 이에 아들 구이신(久爾辛)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이 어려 야마토(大倭)의 목만치(木滿致)가 국정을 잡았다. 아울러 왕모(王母)와 밀통하여 무례한 행위를 많이 저질렀다. 천황은 이를..
2023.08.09 -
백제 전지왕은 왜 상좌평을 설치했을까
백제의 18대왕은 전지왕입니다. 태자 시절 이름은 '영'으로 아신왕 3년에 태자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신왕이었으니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을 상대로 번번이 전쟁에서 패했으며 특히 영원한 노객이 되겠다며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신왕은 고구려와의 대결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97년에 왜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고 그 대가로 태자 영을 볼모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405년에 아신왕이 승하하게 되었는데 급작스런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이면에는 아신왕의 동생인 부여훈해가 태자가 귀국할 때까지 섭정을 맡고 있었으나 아신왕의 막내동생인 부여설례가 진씨 세력과 모의해 쿠데타를 일으켜 부여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던 것입니다. 왜왕은 군사 1백여명으로 하여금 전지를 호위하여 백..
2023.08.08 -
고구려정벌에 실패한 백제 아신왕
백제의 17대 왕은 아신왕입니다. ‘아방왕(阿芳王)’ 또는 ‘아화왕(阿花王)’이라고도 하며 제15대 침류왕의 맏아들이기도 합니다. 출생설화로 한성(漢城) 별궁에서 태어났는데, 신비한 빛이 밤을 밝혀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사실 이전의 왕은 진사왕으로 자연사해서 왕위를 아신왕에게 넘겨준 것이 아니라 진사왕의 사냥에 몰두하다 죽었다고 합니다. 고대임금의 사냥터는 그 희생물을 바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는데요. 여기서 국가의 중대한 일을 논의하기도 하였으니 사냥터에서 10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는 기록은 어쩌면 이 자리에서 진사왕의 폐위가 논의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관미성은 우리나라 북방의 긴요한 곳인데 지금 고구려가 소유하고 있으니 심히 통탄스럽다.’ 『삼국사기』「아신왕조」 관미성을 상실한 것은 진사왕 시..
2023.08.07 -
잊혀진 고대사 미스테리 백제 진사왕의 죽음
‘침류왕이 승하했는데 태자(훗날 아신왕)가 어리므로 숙부인 진사가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삼국사기』에서는 백제 16대왕 진사왕의 등극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침류왕의 아우로 385년 침류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진사왕에 대해서 『일본서기』에서는 조금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데요. ‘백제의 침류왕이 죽자 왕자 아화의 나이가 어리므로 숙부인 진사가 왕위를 빼앗아 왕이 되었다(百濟枕流王薨 王子阿花年少 叔父辰斯奪立爲王)’ 『일본서기』 마치 후대의 일인 조선의 수양대군처럼 진사왕이 침류왕 사후 어린 조카 아신한테서 왕위를 찬탈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 왕인 침류왕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승하한 것으로 보아 진사왕 또는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침류왕을 시해한 후 왕위를..
2023.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