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부터 알아가는 한국사/백제(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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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왕은 어떻게 왕이 되었나
무왕은 『삼국사기』에서는 법왕의 아들로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삼국유사』에서는 빈모와 지룡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서동으로서 생활을 하다가 왕이 되었다고도 하고 ‘아버지가 기틀을 놓고 아들이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한편 『북사』에서는 법왕을 위덕왕의 아들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설 가운데 무왕이 빈모와 지룡의 아들이라는 설은 설화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안에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왕이 법왕의 아들이라면 서동 설화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동은 궁 밖에서 생활했다고 하는데 만약 무왕이 법왕의 아들이라면 굳이 궁 밖에서 생활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동이 서자라도 하여도 혹은 어머니가 미천한 가문의 출신의 여자라 하여도 당시에는 궁 안에서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2023.08.17 -
익산은 백제의 도읍지였을까
무왕은 42년간 즉위하여 혜왕 - 법왕 때의 불안한 정국을 수습하고, 백제의 중흥기를 구축했다는 호평을 받는 군주입니다. 반면 무리한 토목 공사와 정복 전쟁으로 백제의 국력을 소모시켰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존재하는 백제의 30대 왕입니다. 무왕은 풍채와 거동이 뛰어나고 뜻과 기개가 호걸스러웠다고 평가되는 만큼 귀족들에게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던 왕으로 보입니다. 무왕은 익산에서 마를 캐고 살았던 만큼 익산은 그의 정치적 기반이 될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익산시의 도지방기념물 1호는 왕궁평성으로 이지역 주민들에게는 `모질메 산성'으로 불리우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성은 남북으로 4백95m, 동서로 2백35m인 장방형이며 성벽의 두께가 3m에 달할 뿐 아니라 성벽의 축조기법이 백제 양식이며 성 안..
2023.08.16 -
백제의 위덕왕 혜왕 법왕
관산성전투로 성왕의 전사하자 그의 아들인 여창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27대 왕인 위덕왕입니다. 그는 태자시절 관산성 전투를 지휘하였으니 당시 귀족들은 이것을 말렸습니다. 하지만 전투의 패배도 패배지만 이 전투로 그의 부왕 성왕까지 잃었습니다. 이에 부여 창이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왕이 되지 않으려 했습니다. 오히려 출가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백제 여창이 여러 신하들에게 “소자는 이제 돌아가신 부왕을 받들기 위하여 출가하고자 한다.”라고 말하였다. 여러 신하와 백성들이 “지금 임금께서 출가하여 수도하고자 하신다면 우선 왕명을 받들겠습니다. 슬프도다. 전의 생각이 바르지 못하여 후에 큰 근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누구의 잘못입니까. 무릇 백제국은 고려와 신라가 다투어 멸망시..
2023.08.15 -
운명의 관산성 전투
백제와 신라의 협공으로 한강유역으로부터 고구려를 몰아냈습니다. 하지만 한강의 상류지역을 차지한 신라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진흥왕은 고구려와 밀약을 맺었습니다. 성왕은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가야 및 왜와 좋게 지내면서 군사적 지원을 얻으려 했습니다. ‘백제, 가라, 안라가 중부 덕솔 목리금돈, 하내부 아사비다 등을 보내, “고구력 신라와 화친하고 세력을 합쳐 신의 나라와 임나를 멸하려고 도모합니다. 그러므로 삼가 구원병을 청해 먼저 불시에 공격하고자 합니다. 군사의 많고 적음은 천황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조칙을 내려 “지금 백제왕, 가라왕, 안라왕이 일본부의 신하들과 함께 사신을 보내 아뢴 것을 다 들었다. 역시 임나와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와 같이..
2023.08.14 -
성왕의 대외확장과 그 노력
백제성왕은 523년에 무령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지혜와 식견이 빼어나고 결단력 있게 일을 처리하였다.’고 하고 『일본서기』에서는 ‘하늘이 도와 땅의 이치에 통달하였으며 명성을 사방팔방에 퍼졌다.’라고 하니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 듯싶습니다. 그는 즉위한 523년에 고구려군이 패수에 오자 좌장(左將) 지충에게 보병 1만을 주어 무찌르게 하였습니다. 성왕은 중국 남조와 신라, 애, 가야 등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524년 양나라(梁)와 국교를 더 긴밀히 하여 양무제로부터 '지절 도독 백제제군사 수동장군 백제왕'을 책봉 받았습니다. 하지만 즉위 7년째 되는 529년에는 고구려의 침략을 받아 한강 이북지역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고구려의 안장왕은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강..
2023.08.13 -
갱위강국을 선포한 백제 무령왕
백제의 제25대 왕은 무령왕으로 성은 부여(扶餘)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지석에 따르면 462년 태어났고 이름은 사마 (斯麻) 또는 융(隆)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사마왕’으로도 불리니 즉 섬왕입니다. 그러한 이유는 그의 어머니가 백제에서 일본으로 가는 도중 섬에서 무령왕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개로왕은 아우인 곤지를 일본으로 보냈고 그러면서 개로왕의 임신한 부인까지 딸려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산기를 느껴 후쿠오카 북쪽의 가카라시마라는 섬에 정박하여 무령왕을 출산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서기』에서 461년에 태어났다고 전하고 있으며, 실제로 무령왕릉 발굴 결과 523년에 사망할 당시 62세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고대 임금으로 생몰년이 비교적 명확한 편입니다. 그런데 개로왕이 왜 자신의 임신한 부인을 곤지에게 ..
2023.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