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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조선의 반격 그리고 의병의 활약
임진왜란 초기에는 왜군의 의도대로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1592년 6월 13일 조선수군은 판옥선 24척과 함선 15척을 가지고 여수를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6월 18일에는 원균이 합류하였습니다. 당시 정찰대는 거제 옥포에서 왜선을 발견하고 신기전을 쏘아 이를 알렸습니다. 당시 옥포에는 도도 다카토라가 이끄는 왜선 50여 척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이 곳에서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이를 지켜보고만 있더 조선 수군, 왜적이 모두 배에 승선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왜선이 가까이 다가오자 조선의 수군은 왜군의 100m의 조총 사거리 밖에서 함포사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정거리를 좁히려 했지만 이순신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수군에 왜선 26척이 불타 수몰되..
2023.02.18 -
임진왜란 발발과 초기 진행
‘왜구가 상륙한 후에 상이 침전(寢殿)에 앉아 계셨는데 침전 서쪽 작은 못에서 푸른색 무지개가 나타나 그 기운이 동쪽을 향하다가 북쪽으로 향하여 중문(中門)을 뚫고 전상(殿上)에 올라 어좌(御座)에까지 접근했다. 상이 피하여 서쪽으로 앉으면 서쪽을 향하고 동쪽으로 피하면 동쪽으로 향했다고 한다.’ 「선조실록」 궁궐 우물가에서 일어난 푸른 무지개가 선조의 몸을 뒤덮던 날, 일본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온 날입니다. 바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전국통일 과정에서 다져온 군사들로 조선침략을 감행하였습니다. "왜구가 침범해 왔다. (중략) 적선이 바다를 덮어오니 부산첨사 정발은 마침 절영도(오늘날 영도)에서 사냥하다가 조공하러 오는 왜라 여기고 대비하지 않았는데 미처 진(鎭)에 돌아오기도 전에 적..
2023.02.17 -
임진왜란은 막을 수 없었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납니다. 7년간에 걸친 이 전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전쟁을 거친 조선은 가장 큰 피해를 입고도 왕조가 교체되지 않았지만 이미 침체기를 겪고 있던 명은 더욱 약해져 청나라로 교체되었고 일본도 이후에 도쿠가야 이에야스에 의해 새로운 막부가 성립되었습니다. 이렇듯 동아시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 이 전쟁, 임진왜란은 과연 조선은 막을 수 없었을까. 사실 전쟁을 일으키려는 일본의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1591년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보고서가 올라옵니다. ‘왜적인 반드시 침범할 것이오니 대비책을 마련하심이 옳을 듯 하옵니다.’ -정사 황윤길- ‘일본에서 그런 정황을 보지..
2023.02.16 -
조선시대 과거제도
뱃 속에 든 시와 책이 몇 백 짐이던가/올해에야 가까스로 난삼을 걸쳤네. 구경꾼들아. 몇 살인지 묻지를 마소/ 60년 전에 스물셋이었네. 이 시에 표현된 난삼이라는 의복은 과거합격자들이 걸치는 예복으로 이 시는 조선 영조 대에 과거에 합격한 조수삼이라는 시입니다. 과거에 합격한 감격을 표현한 것인데 여기서 눈에 띄는 구절은 바로 60년 전에 자신의 나이가 스물 셋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합격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83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이 83임에도 과거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볼 적에 나이제한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경국대전』에서는 과거응시자에 대한 나이와 신분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죄를 범해 관직 임명이 영구히 차단된 자, 탐관오리의 아들, 재..
2023.02.15 -
조선의 왕세자교육과 사대부의 손자교육일기 양아록
조선시대에는 현대와 마찬가지로 교육열이 높았습니다. 특히 궁궐에서도 세자를 위한 학습이 마련되었는데 일종의 예비 제왕을 가르치는 훈련이었습니다. 일단 세자에 대한 조기교육은 3세때까지 보양청이라는 곳에서 맡았습니다. 이곳의 실무 보양관 10여명이 세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가르친 것입니다. 정조는 세손시절에 붓과 먹을 가지고 놀며 책을 읽는 흉내를 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효자와 공자의 일생을 그린 그림을 보며 흉내내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중종의 원자는 만 2살 때에 『천자문』과 『유합(類合):한문학습서』를 절반이나 외워 중종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양청에서 교육을 받은 세자는 강학청이란 곳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이 곳에서 세자와 스승간의 상..
2023.02.14 -
정철과 기축옥사
조선의 3대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정철은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관동별곡 등 조선을 대표하는 가사를 짓어 현재에도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문학작품을 남겼습니다. 정철은 1536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철의 집안은 왕실과 관련있으며 큰 누나가 12대 임금인 인종의 숙의였고 작은 누나는 계림군 이유의 부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는 명종이 임금이 되기 전에 같이 놀기도 한 사이였습니다. 나름 집안이 빵빵했지만 그의 가문에도 고난이 닥쳤습니다. 그것은 인종이 즉위 9개월 만에 요절하고 계림군이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능지처참당하면서 집안이 기운 것입니다. 당시 정철의 아버지 정유침은 사온령 즉, 궁중에서 사용하는 술을 빚는 사온서의 책임자였으며 맏형인 정자는 이조전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정..
2023.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