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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과 중종반정 그리고 장녹수
김처선은 조선 세종 대에 들어온 내시였습니다. 그는 세종 때부터 연산군까지 일곱 임금을 섬겼으며 그러면서 임금은 그를 곁에 두고 아꼈습니다. 세조 임금은 그를 원종공신 3등에, 성종은 자헌대부에 승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조 때에는 처벌당해 관노로 궁궐에서 추방당했으나 곧 복직되었으니 그것은 그가 보여준 왕에 대한 충성심과 청렴이 한몫한 것이었습니다. 김처선은 여러 임금을 섬겼으니 그 충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하루는 연산군이 처용무를 추었는데 그 춤이 음란했다고 합니다. 본래는 그렇게 음란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구미에 맞게 퇴폐스럽게 만드니 신하로서 김처선은 한 마디하였습니다. 당시는 두 번의 사화를 겪으면서 삼사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임금의 폭정 때문에 감히 말을..
2023.02.12 -
연산군은 왜 폭군이 되었나.
연산군은 성종의 적장자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후궁이었다가 성종의 총애를 받아 왕비의 자리에 오른 윤씨였습니다. 연산군은 7세 때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세자 수업을 받으며 부족함 없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494년 성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10대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결함이 있었으니 그의 친모가 폐비 윤씨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종의 첫 후궁이었고 그리하여 왕비의 자리에 오르기 힘들었으나 검소함과 겸손함 등으로 왕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비가 된 후에 폐비 윤씨가 이전의 성품과 다른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는데 예를 들면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였고 특히 그 정도가 지나쳐 임금의 얼굴에 상처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중죄로 말미암아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관여..
2023.02.11 -
인수대비와 폐비 윤씨
조선 왕실에서 형제간의 갈등도 비극을 불렀지만 고부간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와 성종의 두 번째 왕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사이의 갈등은 후에 엄청난 사건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면 인수대비는 어떤 사람일까요. 사실 인수대비는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인수대비는 세조 때 좌의정을 지낸 서원부원군 한확의 여섯째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교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그전에 태종 때에 3번에 걸쳐 조선의 여자를 뽑아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졌습니다. 그 때 한확의 누이가 선발되었는데 명의 3대 황제 영락제는 그의 뛰어난 미모에 반해 후궁으로 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더 나아가 한확의 잘생긴 외모에 그에게 벼슬을 내리고 부마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확..
2023.02.10 -
남이 장군
남이 장군은 조선 세조시기에 활약한 장수입니다. 특히 그는 무과에 17살에 일찍이 합격하여 그 재능을 인정받았는데 조선 전기 문과 급제평균연령이 30세 전후였고 무과도 거의 비슷했다고 하니 남이의 능력은 발군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이는 태종의 외증손이면서 당시 최고 권세가인 권람의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권람의 딸과 결혼하게 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남이장군은 귀신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얼굴에 분칠을 한 소년귀신을 보게 되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뒤를 쫓으니 좌의정 권람의 집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후 권람의 딸이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리고 귀신이 붙어있는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남이는 귀신을 쫓아내니 권람의 딸은 되살아났다고 합..
2023.02.09 -
세조와 공신정치
세조의 왕위 찬탈이 과연 정당했는지 아니면 부도덕했는지 그것은 후대 사람들의 판단의 몫일 것입니다. 세조가 이후 어떠한 정치적 행보를 걸어왔든 그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여전히 현대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에서도 그런데 당시 세조는 마음이 어땠을까. 자신도 조카를 끌어내리고 왕의 자리에 올랐으니 그 역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태종이 왕자의 난을 통해 왕의 자리에 올라 왕권강화에 힘을 쏟듯이 세조 역시 왕이 되고 나서 한 일은 바로 왕권을 강화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세력들, 즉 자신이 왕에 될 적에 도움을 준 공신들을 중심으로 정치를 이끌어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조의 시대는 소수의 공신을 중심으로 정국이 운영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2023.02.08 -
세조의 왕위 찬탈
1453년 조선 궁궐에서는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른바 계유정난. 수양대군의 쿠데타는 지금에 이르러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선후기에도 그러했으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 전해지는 책이 바로 『금계필담』이라는 야사입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의령현감을 지낸 서유영이 저술한 책으로 130여 편의 설화를 담고 있으며 1873년에 만들어진 책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발하여 궁에서 쫓겨난 그의 딸과 멸문지화를 당한 김종서의 손자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부부와 관련하여 속리산 한 자락에는 그들이 살았다고 하는 굴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계필담 속에서 세조는 자신을 닮은 아이를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꾸며낸 이야기이겠지만 어..
202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