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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해외파병 나선정벌
우리나라가 서양세력과 충돌을 일으킨 것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일어나던 개항하기 직전이 최초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앞서 우리나라는 서양의 세력과 군사적 충돌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군과 맞닥뜨린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임금은 효종이었습니다. 효종은 1649년에서 1659년까지 조선의 왕으로 군림하였습니다. 그러면 당시 조선군이 러시아군과 싸웠던 것은 무슨 이유때문이었을까. 당시 효종은 우리에게 북벌론을 추구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인조로 바로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었던 임금입니다. 그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아마 8년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볼모생활을 했던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청나라에 끌려간 그는 조선의 군사력..
2023.01.31 -
중립외교의 광해군과 친명배금의 인조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다시 한 번 커다란 난리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임금은 인조였습니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인조는 광해군을 왜 몰아냈을까. 사실 알고 보면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겪었으며 당시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선을 잘 이끌었던 당시 세자였습니다. 그는 국난 당시 흔들리던 민심을 수습하고 왕실을 권위를 되찾는데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세자 시절에 대해 『선조수정실록』은 ‘행동을 조심하고 부지런히 하여 중외 백성들의 마음이 복속하였으므로 선조가 가려서 세웠다.’라고 기록하였으니 그에게는 일찍이 왕으로서의 자질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위기상황 속에서 조정의 대신들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후계자를 선택해야 한다..
2023.01.30 -
한산대첩의 승리와 그 과정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육군과 수군으로 조선을 압박하였고 육지에서의 일본군의 행보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차질이 생겼습니다. 일본군은 자신들의 수군이 바다에서 조선에게 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일본군은 옥포, 당포, 당항포, 율포 등지에서 연거푸 패배를 거듭하였습니다. 사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수군에게 조선의 수군을 격파하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육군과 합류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명나라까지 북상하라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수군은 3개의 부대로 조직되었습니다. 그리고 와키사카 야스하루의 1부대를 중심으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을 격파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일본의 제 1부대는 대선 36척, 중..
2023.01.29 -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만남,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1800년대 조선은 여러 가지로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일본 및 유럽의 열강들이 조선 해안으로 와 통상을 외치며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대내적으로는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며 부패했고 그에 따라 백성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습니다. 내외적인 혼란에 따라 봉기가 잇따른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왕은 고종, 하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흥선대원군에게 있었습니다. 왕이 아닌 흥선대원군이 어떻게 조선 최고의 실권자가 될 수 있었을까.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조선은 정치적으로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세도정치란 특히 19세기에 한 명 혹은 극소수의 권세가를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던 정치형태로 안동김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가 닫시 권력가문으로써 권세를 누렸고 왕권은 힘을 잃어갔습니다..
2023.01.28 -
조상들이 만든 거북선
임진왜란 때 이순신은 많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당시 패전을 거듭하던 조선군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순신의 활약과 더불어 기억되는 것이 바로 거북선입니다. 거북선 이전에도 삼면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항해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조선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배를 만들어 일본 열도와 통하였고 백제는 발달된 조선술로 해상제국을 건설했을 것이며 장보고의 해상 장악에는 바로 발달된 항해술과 조선술이 자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도 이러한 기술은 이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몽골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를 통하여 배를 만들게 한 것은 단지 우리나라가 부마국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시 고려에는 발달된 조선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이전만큼..
2023.01.27 -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학자들 간의 성리학을 주제로 한 논쟁이 제법 있었습니다. 특히 퇴계 이황과 기대승이 펼친 이른바 사단칠정 논쟁, 이것은 ‘인간의 선한 감정을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그럼 사단칠정이란 무엇인가. 사단칠정은 성리학의 철학적 개념 가운데 하나로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사단과 인간의 자연적 감정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을 뜻합니다. 이황은 그러면서 ‘사단은 항상 선한 것이요, 칠정은 선과 악이 섞여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은 둘로 분리되어 작용하는 감정이 아니라, 칠정 가운데 선한 것 부분이..
2023.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