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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한 이유
고구려의 첫 도읍지는 졸본성입니다. 지금의 환인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주몽이 건너와 소서노 세력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건국한 곳이니 이 곳은 본래 소서노의 근거지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 도읍한 오녀산성은 산정상에 있는 산성이고 주몽과 소서노는 이 곳에서 6칸 정도의 건물을 짓고 살았습니다. 이 곳은 방어용인 산성으로 피난처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며 절벽 위에 지어져 남북 1km 동서 300m의 규모의 성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세트를 이루는 평지성으로 하고성자성지가 있습니다. 동벽 226m, 서벽 264m, 남벽 212m, 북벽 237m인 이 하고성자성지를 오녀산성과 세트를 이루는 성으로 보이는 이유는 여기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오녀산성의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1.5km 떨어진 곳..
2022.11.20 -
청동기 시대 전쟁의 현장, 부여 송국리 유적
2004년 대전시 유성구 장대동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갑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야트막한 구릉인데 정상부근에서는 청동기 분묘와 원삼국시대 집터 등 15기의 유구가 확인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집터는 대부분 불에 탄 상태였습니다. 바닥에는 토기들이 깨져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바로 청동기 시대의 약탈 현장입니다. 청동기 시대에 약탈이 벌어진 건 이 시기부터 계급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족장이 등장하고 이들의 권력은 부족의 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단적인 약탈과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복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가 발견되는 장소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거지를 구릉지대로 옮기고 방어시설을 구축합니다. 망루나 목책을 쌓고 마을 전체를 해자로 감싸는 경우도 있습니다..
2022.11.19 -
백제의 계획도시 사비
475년 한성백제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웅진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이 곳은 475년부터 538년까지 백제의 도읍으로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문주왕이 암살되었고 동성왕 역시 귀족들의 세력 다툼 속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웅진이란 곳에서 백제의 왕이 살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왕의 피살 사건과는 달리 백제의 금세공술은 최고수준에 올라왔고 백제의 백성들의 삶은 안정권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웅진시절의 무령왕의 백제는 양나라와 교류를 하며 국력을 과시하였습니다. ‘백제는 고구려를 여러 번 격퇴하고 다시 강국이 되었다.’ 『중국 양서 백제전』 그리고 이러한 무령왕의 뒤를 이어 성왕이 뒤를 이으니 『삼국사기』에서는 지혜와 식견이 영특하고 일에 결단성이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
2022.11.18 -
옥전동고분군, 우리가 모르는 또다른 가야
합천 옥전 고분군이 발견된 것은 1985년 여름이었습니다. 수풀과 나무가 가득차 그동안 발견되지 못하다가 발견된 것으로 봉토분 27기를 포함한 많은 지하 무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의 가야고분군은 가야고분의 변화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이러한 옥전고분군은 양직공도와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다라국 수장층의 무덤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철제유물로 말갑춤과 무기, 갑 옷등이 춭토되었고 특히 이곳에 출토된 말머리가리개는 일본 와카아먀시 오타니고분에서 출토된 말머리가리개와 그 모습이 유사하여 가야지역에서 제작된 것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다라국은 말과 사람이 갑옷을 갖춰 입은 중장기병이 실재한 나라였다는 것도 알 수 있습..
2022.11.17 -
일본 땅에 핀 백제문화 아스카
규슈지역으로 들어온 백제인들은 더 좋은 땅을 찾아 동쪽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바로 일본의 나라와 오사카 일대입니다. 나라지역은 일본을 최초로 통일한 야마토정권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백제인들은 크게 활약하며 현재까지 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럼 오사카 일대에는 어떠한 백제인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을까. 일단 이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백제인들의 자취는 현재 축제로도 남아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천왕사왔소’축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사카에서는 ‘백제교’, ‘남백제 보도교’, ‘오사카 백제역’ 등 이 곳에 백제인이 와서 살았음을 현재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온 것뿐만 아니라 마을을 이루어 살며 문화를 전파하였고 그 영향이 지명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
2022.11.16 -
백제인은 왜 일본에 마을을 만들었을까.
백제는 660년에 멸망하였습니다. 고구려도 이후 망했지만 고구려유민들이 고구려가 망한 자리에 나라를 세우니 그것은 바로 발해였습니다. 백제도 역시 이러한 자신들만의 나라건설을 꿈꾼 건 아니었을까요. 백제는 그것을 자신들이 예로부터 문화를 전수해준 곳으로 터전을 옮기어 실현해 나갑니다. 그곳은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한반도와 일본열도간에 교류는 오래전부터 잇어왔습니다. 이다즈케 유적지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일본최초의 농경문화가 시작된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한반도의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기원전부터 한반도인들이 농경문화를 가지고 온 곳으로 한국의 울산 금단리, 부여 송국리 선사유적과 관련되어 지는 곳입니다. 이 외에도 요소노가리라는 유적지는 한반도의 청동기와 철기 문화를 받아들인..
2022.11.15